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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는 빛과 어둠, 신비와 영성이 교차하는 곳이며, 우리의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런 신비의 세계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바로 외경(外經)에 기록된 천사의 계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성경 속 천사들로부터 비롯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천사는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메신저로 등장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창세기 16:7), 때로는 인간을 보호하며(시편 91:11), 때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기도 합니다(창세기 19:1-22). 이들은 하나님의 신하이자 군대, 그리고 보좌를 호위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천사에 대한 개념은 점차 더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특히 바벨론 포로기 이후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이 강조되면서, 천사는 단순한 메신저를 넘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의 역사를 이끄는 초월적 존재로 발전합니다. 욥기, 다니엘서, 토비트서 같은 성경 정경과 더불어, 에녹서와 같은 외경과 묵시문학을 통해 천사의 역할과 위상이 점차 구체화되죠.
그리하여 우리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과 같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고, 성경 밖의 외경과 전승을 통해 우리엘, 루시퍼 같은 존재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계보는 중세 신학자 디오니시오 아레오파기타에 의해 구품천사(九品天使)라는 구조로 정리됩니다. 세라핌, 케루빔, 오파님, 도미니온즈, 비츄스, 파워즈, 프린시펄리티즈, 아크엔젤스, 엔젤스. 9계급, 3개의 층위로 나뉜 이 체계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세계의 복잡성과 질서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외경에서는 천사들의 계보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단순히 위계나 역할만이 아니라, 천사들의 타락과 인간과의 금지된 사랑, 우주의 비밀을 누설한 반역의 서사까지 담겨 있습니다.
에녹서의 타락한 천사들
에녹서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만 2천 년 전, '그리고리(Grigori)'라 불리는 파수꾼 천사들이 인간의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인간을 교육하고 이끄는 일이었지만, 아름다운 인간 여성들을 보고 욕망을 품게 됩니다.
"우리 모두 저 아이들을 아내로 맞아 아기를 만들지 않겠는가?"
그렇게 200명의 천사들은 함께 맹세하며 인간 여성과 결혼하고 자손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식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존재, 네피림(Nephilim)이었습니다. 키가 1,350미터에 달한다는 그들은 탐욕과 폭력으로 세상을 망쳐갔고, 결국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에 이릅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인간에게 전쟁의 도구, 장신구, 마법, 점성술 등 신의 비밀을 가르쳐줍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를 타락과 파멸로 이끌었고, 결국 하나님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을 보내어 반역한 천사들을 심판하고 인간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십니다.
이 외경의 이야기는 왜 정경에서 제외되었을까요? 아마 그 안에 담긴 신성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야기, 신비와 금기의 서사가 그 시대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경이로움과 상상력의 불꽃을 지피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9계급 – 질서와 신비의 구조
외경과 신학적 전통 속에서 천사들은 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뉩니다. 각 계급은 또다시 3개의 세부 계급으로 구성되며, 이 모든 계급은 신의 뜻을 전하고 지키는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 상급천사
- 세라핌(치천사): 하나님의 옥좌 주위를 돌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칩니다. 순수한 사랑과 창조의 불꽃을 상징하며, 인간 앞에 나타날 때는 여섯 날개와 네 얼굴을 가집니다.
- 케루빔(지천사):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며, 에덴동산의 문을 막은 불칼을 든 수호자입니다.
- 오파님(좌천사): 하나님의 옥좌를 움직이는 불꽃 같은 바퀴, 수많은 눈으로 세상을 감찰합니다.
- 중급천사
- 도미니온즈(주천사): 신의 통치를 우주에 알리고, 선과 악,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 비츄스(역천사): 용기와 은총을 주며 기적을 주관합니다. 그리스도의 승천 때 그 곁에 있던 천사로 여겨집니다.
- 파워즈(능천사): 악마와의 전투를 담당하는 군대의 선봉장입니다. 악의 유혹에 가장 가까이 노출되기에 타락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 하급천사
- 프린시펄리티즈(권천사): 나라, 도시, 지역을 수호하며 영적 지도자들의 보호자 역할을 합니다.
- 아크엔젤스(대천사):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메신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 엔젤스(천사): 가장 인간 가까이에 있는 존재로, 일상의 세밀한 부분에 관여하며 인간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이 계급은 단순한 위계라기보다 질서의 언어, 우주의 조화와 연결성을 상징합니다. 각 천사는 자신의 역할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며, 인간과 우주의 균형을 맞추는 존재로 이해됩니다.
천사 이야기,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
외경에 기록된 천사들의 계보는 단순한 신화나 전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 질서와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인간은 늘 물었습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는 누구인가?"
"악과 싸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빛과 어둠의 경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수많은 상상과 신앙의 이야기들이 천사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천사는 희망, 보호, 치유, 위로, 정의, 심판, 경고의 상징으로 우리의 삶 속에 숨쉬고 있습니다.
혹여 마음이 무너질 때, 삶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을 때,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수많은 별들 너머에는 당신을 위해 싸우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오늘도 속삭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님이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천사의 계보를 따라가며, 우리 역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순례자가 되어 보길 소망합니다.